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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보르 ==== Сабор. 본래는 중세 제정에서 대귀족과 고위 성직자가 모여 전쟁·세금·제위 계승을 논의하던 신분 회의였다. 즐라토미로비치 왕조 때 정기적으로 소집되어 차르의 권력을 견제했고, 1611년에는 혼란기를 끝내며 보그단 1세를 차르로 추대했다. 그러나 1652년 대법전을 승인한 회의를 마지막으로 255년 동안 소집되지 않았다. 1905년 [[1905년 러시아 혁명|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인터그라드 총파업과 평원의 농민 봉기가 번지자, 라자르 2세는 1907년 《국가기본법》을 공포해 사보르를 양원제 의회로 되살렸다. 상원은 통치평의회 평의원과 차르가 임명하는 의원 절반, 귀족 회의·정교회·상공회의소가 뽑는 의원 절반으로 이루어졌다. 하원인 민회(Народно веће)는 지주·도시민·국가 농노 마을의 세 선거인단이 간접선거로 뽑았는데,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영주 농노에게는 선거권이 없었다. 사보르는 1907년, 1910년, 1913년 세 차례 소집되었고 매번 차르의 해산으로 끝났다. 1913년 하원이 농노 해방 법안을 상정하자 라자르 2세는 개원 4개월 만에 하원을 해산하고 다음 선거를 무기한 미루었다. 사보르는 1917년 장미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면서 사라졌고, 공화국은 이 이름을 버리고 새 의회를 [[국민의회(사랜드 공화국)|국민의회]]와 [[원로원(사랜드 공화국)|원로원]]으로 불렀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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